Tourist

호주에서 온 편지

Life + Live

호주에서 온
편지

호주 속의

또 다른 호주

캥거루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애들레이드에서 페리를 타고 캥거루 아일랜드로 넘어왔습니다. 이 섬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캥거루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잡지에선가 선한 얼굴로 낯선 이방인을 멀뚱멀뚱하게 바라보는 순진한 눈빛의 캥거루를 본 적이 있습니다. 호주에 여행을 간다면 그 눈빛 앞에 서고 싶었고, 마침 애들레이드로 오게 됐고, 애들레이드에서 캥거루 아일랜드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저는 주저 없이 이곳으로 왔습니다.

글·사진 최갑수(시인ㆍ여행작가)

‘캥거루 아일랜드’와 ‘애들레이드’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리마커블 락

Tourist

호주에서 온 편지

Life + Live

호주에서 온
편지

호주 속의
또 다른 호주

캥거루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애들레이드에서 페리를 타고 캥거루 아일랜드로 넘어왔습니다. 이 섬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캥거루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잡지에선가 선한 얼굴로 낯선 이방인을 멀뚱멀뚱하게 바라보는 순진한 눈빛의 캥거루를 본 적이 있습니다. 호주에 여행을 간다면 그 눈빛 앞에 서고 싶었고, 마침 애들레이드로 오게 됐고, 애들레이드에서 캥거루 아일랜드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저는 주저 없이 이곳으로 왔습니다.

글·사진 최갑수(시인ㆍ여행작가)

‘캥거루 아일랜드’와
‘애들레이드’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리마커블 락

Dear. 한라인

애들레이드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곳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캐세이퍼시픽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애들레이드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는 애들레이드에서 배로
1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시링크 사이트를 통해 예약할 수 있어요.
캥거루 아일랜드는 넓은 섬이랍니다.
사나흘 정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돌아보시길 권해드려요.
물론 일주일 정도 넉넉하게 잡아도 됩니다.
캥거루 섬에는 아담한 호텔과 산장이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은
머큐어캥거루아일랜드롯지랍니다.
항구와 킹스코트공항에서 30분 거리예요.


From. 최갑수

캥거루 아일랜드로 들어오는 페리 안에서 이 섬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담긴 브로슈어를 읽었습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는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4,5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설명해 놓았더군요.
하지만 인구는 5,00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섬의 별명이 ‘호주의 갈라파고스’라고 자랑해 놓았습니다. 이 섬에는 캥거루와 코알라, 왈라비등 다양한 종류의 호주 토종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21개의 자연 보존 지역과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30여 종의 동물과 250여 종의 새, 9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요. 바다사자와 펠리컨을 비롯해 뉴질랜드 물개, 야생 코알라, 검은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이 살아갑니다. 이 가운데 60종은 오직 캥거루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라고 합니다. 섬은 1802년 영국의 탐험가 매튜 플린더즈가 처음 발견했는데요, 탐험대는 곤봉으로 캥거루 몇 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이 섬을 ‘캥거루 아일랜드’라 이름 붙였다고 하네요. 병주고 약주고….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요로 가득한 외딴 섬
섬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길을 한참 동안 달려도 마을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에 모여 와인을 마시거나 집에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길이 바다에 가까워지면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차창을 활짝 열면 밀물처럼 파도소리가 밀려와 귓전을 적시죠. 매튜 플리더즈보다 제가 이 섬을 먼저 발견했다면 전 이 섬을 고요의 섬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한국은 이제 가을에 접어들었겠네요. 파도처럼 온갖 생각이 밀려갔다가 밀려옵니다. 숙소의 침대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읽습니다. 책을 읽기 가장 좋은 장소는 기차 안이나 낯선 호텔의 침대 위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을 만져보고 싶어 하는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너무 오래 당신을 만져 보지 못해 이젠 쓸모없이 되어버린 손처럼 보이네요.”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 고요를 깨트릴까봐 조용히 책장을 덮었습니다.

바다사자의 고향
오늘은 ‘실 베이’(Seal Bay)에 다녀왔습니다. 호주 바다사자의 고향으로 불립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 상태의 바다사자를 가까이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곳이죠. 수백 마리 바다사자가 바로 눈 앞 해변에서 늘어져 누워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헤엄치다가, 혹은 모래밭을 뒹굴거리다가 잠이 든 바다사자는 쓰다듬고 싶을 만큼 귀엽지만 이 곳 역시 ‘룰’이 적용되죠. 항상 국립공원 가이드와 함께 있어야 하며 절대로 바다사자 근처로 접근해서는 안된답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사자들을 지키는 방법이죠.
해변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수평선이 명주실처럼 끊어질 듯 이어졌습니다. 바다사자를 바라보면서 누구라도 이곳을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해변을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다사자들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군요. ‘이 섬은 누구나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좌)01.
캥거루 아일랜드에는 유독 쭉 뻗은 도로들이 많다.

(우)02.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캥거루

03.
실 베이Seal Bay는 호주 바다사자의 고향으로 불린다.

인생은 즐겨야 하는 거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칵테일 원료로 중요하게 쓰이는 진을 직접 만들어 마시는 가게에 잠깐 들렀습니다. 주인은 아주 친절하게 진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스무 가지가 넘는 재료를 각자 자기의 취향에 맞게 섞어 만들어 마십니다. 저는 아주 쓰고 신 맛을 원해서 재료를 좀 이상한 비율로 섞었답니다. 제가 만든 진을 맛 본 주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베리. 디피컬트.” 저는 그녀를 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맛보았더라도 그런 웃음을 지었겠지요.
직접 만든 진은 유리병에 잘 담아 코르크 마개로 꼭꼭 막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함께 마실 겁니다. 저는 햇빛이 잘 드는 잔디밭에 앉아 주인이 만든 수준급의 진을 마시고 있습니다. 달콤하고 시큼하고 매콤합니다. 아주 향기롭고요.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물거품이에요. 그러니까 즐겨야죠.” 진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습니다.
남호주의 찬란한 햇살이 눈꺼풀 위에 어룽댑니다.

신념처럼 굳건한 풍경
오늘은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를 찾은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기도 하죠.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등의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탐방하며 야생 동물을 만나는 일은 감동적이고 가슴 찡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하죠. 동물의 생태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답니다. 큰소리로 떠들어서도 안되고 무턱대고 만져서도, 가이드의 허락이나 안내 없이 가까이 가서도 안됩니다. 지정된 탐방로를 따라가며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탐방 매너죠.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는 ‘리마커블 락Remarkable Rock’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투구나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바위가 바닷가 화
강암 암반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설치작품처럼 보이는 이 바위는 오랜 세월 거센 파도와 바람이 깎아 만든 것입니다. 석양 무렵에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데,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토 스팟 가운데 한 곳으로 손꼽히죠. 바위는 고요의 풍경 그 자체입니다. 오랜 세월 고요와 침묵에 단련된 육체로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바위가 두르고 있는 갑옷처럼 단단한 ‘고요’. 사람들은 갑각류 같은 그 고요 앞에서 우뚝 멈추고 오래도록 바위를 바라보곤 합니다.

(좌)04.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에는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나무데크 탐방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우)05.
성채처럼 서 있는 리마커블 락은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다.

사랑스러운 도시 애들레이드
남호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애들레이드에 도착했습니다. 호주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영국의 영향을 유난히 많이 받은 도시에요. 1836년에 애들레이드 초대 총독인 힌드마시를 따라 온 270여 명의 영국 이민자가 정착하면서 애들레이드의 역사가 시작됐죠.
애들레이드는 영국 정부가 자유 이민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도시가 커져도 재정비할 필요없게 조성한 ‘계획도시’입니다. 그래서 애들레이드 지도를 보면 도시가 직사각형으로 재단되어 있답니다. 도시는 토런스강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는데, 이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애들레이드의 풍경은 평화롭고 차분합니다. 젊은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기고,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칩니다.

선물을 산다는 것
런들 스트리트를 걷다 초콜릿 가게인 ‘헤이그 초콜릿’을 발견했습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제 초콜릿 가게죠. 한국의 지인들에게 나눠 줄 초콜릿을 잔뜩 사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산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초콜릿을 사자마자 펜폴즈 와이너리로 달려갔습니다.
애들레이드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만 가면 된답니다. 펜폴즈는 호주의 국보급 와인이에요. 와인 전문지인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그랜지 1955년 빈티지가 ‘세기의 와인’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그랜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하고 응집력이 뛰어난 드라이 테이블 와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죠.
와인을 마시며 문득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을 알고 나서부터,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뒤로 좋은 풍경 앞에서 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당신이 생각난답니다. 당신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전 생에도 알았고, 그 앞의 생에도 알았던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에는 꼭 당신과 함께 하길 소망해봅니다.

(좌)08.
팬폴즈 와이너리의 소믈리에

(우)09.
캥거루 아일랜드에서는 꼭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맛봐야 한다.

06 – 07.
영국 정부가 조성한 도시인 애들레이드의 대표 거리 ‘런들 스트리트’에는 여전히 영국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다.

Travel Tip
애들레이드 보타닉 가든 레스토랑(www.botanicgardensrestaurant.com.au)은 보타닉 가든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인과 함께 다양한 호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다렌버그 와인(www.darenberg.com.au)에서는 남호주 와인 시음 뿐만 아니라 직접 블랜딩 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답니다. 펜폴즈 맥길 에스테이트(www.penfolds.com)는 미리 예약하면 편하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Dear. 한라인

애들레이드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곳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캐세이퍼시픽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애들레이드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는 애들레이드에서 배로
1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시링크 사이트를 통해 예약할 수 있어요.
캥거루 아일랜드는 넓은 섬이랍니다.
사나흘 정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돌아보시길 권해드려요.
물론 일주일 정도 넉넉하게 잡아도 됩니다.
캥거루 섬에는 아담한 호텔과 산장이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은
머큐어캥거루아일랜드롯지랍니다.
항구와 킹스코트공항에서 30분 거리예요.


From. 최갑수

캥거루 아일랜드로 들어오는 페리 안에서 이 섬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담긴 브로슈어를 읽었습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는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4,5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설명해 놓았더군요.
하지만 인구는 5,00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섬의 별명이 ‘호주의 갈라파고스’라고 자랑해 놓았습니다. 이 섬에는 캥거루와 코알라, 왈라비등 다양한 종류의 호주 토종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21개의 자연 보존 지역과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30여 종의 동물과 250여 종의 새, 9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요. 바다사자와 펠리컨을 비롯해 뉴질랜드 물개, 야생 코알라, 검은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이 살아갑니다. 이 가운데 60종은 오직 캥거루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라고 합니다. 섬은 1802년 영국의 탐험가 매튜 플린더즈가 처음 발견했는데요, 탐험대는 곤봉으로 캥거루 몇 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이 섬을 ‘캥거루 아일랜드’라 이름 붙였다고 하네요. 병주고 약주고….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요로 가득한 외딴 섬
섬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길을 한참 동안 달려도 마을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에 모여 와인을 마시거나 집에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길이 바다에 가까워지면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차창을 활짝 열면 밀물처럼 파도소리가 밀려와 귓전을 적시죠. 매튜 플리더즈보다 제가 이 섬을 먼저 발견했다면 전 이 섬을 고요의 섬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한국은 이제 가을에 접어들었겠네요. 파도처럼 온갖 생각이 밀려갔다가 밀려옵니다. 숙소의 침대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읽습니다. 책을 읽기 가장 좋은 장소는 기차 안이나 낯선 호텔의 침대 위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을 만져보고 싶어 하는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너무 오래 당신을 만져 보지 못해 이젠 쓸모없이 되어버린 손처럼 보이네요.”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 고요를 깨트릴까봐 조용히 책장을 덮었습니다.

바다사자의 고향
오늘은 ‘실 베이’(Seal Bay)에 다녀왔습니다. 호주 바다사자의 고향으로 불립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 상태의 바다사자를 가까이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곳이죠. 수백 마리 바다사자가 바로 눈 앞 해변에서 늘어져 누워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헤엄치다가, 혹은 모래밭을 뒹굴거리다가 잠이 든 바다사자는 쓰다듬고 싶을 만큼 귀엽지만 이 곳 역시 ‘룰’이 적용되죠. 항상 국립공원 가이드와 함께 있어야 하며 절대로 바다사자 근처로 접근해서는 안된답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사자들을 지키는 방법이죠.
해변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수평선이 명주실처럼 끊어질 듯 이어졌습니다. 바다사자를 바라보면서 누구라도 이곳을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해변을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다사자들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군요. ‘이 섬은 누구나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좌)01.
캥거루 아일랜드에는 유독 쭉 뻗은 도로들이 많다.

(우)02.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캥거루

03.
실 베이Seal Bay는 호주 바다사자의 고향으로 불린다.

인생은 즐겨야 하는 거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칵테일 원료로 중요하게 쓰이는 진을 직접 만들어 마시는 가게에 잠깐 들렀습니다. 주인은 아주 친절하게 진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스무 가지가 넘는 재료를 각자 자기의 취향에 맞게 섞어 만들어 마십니다. 저는 아주 쓰고 신 맛을 원해서 재료를 좀 이상한 비율로 섞었답니다. 제가 만든 진을 맛 본 주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베리. 디피컬트.” 저는 그녀를 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맛보았더라도 그런 웃음을 지었겠지요.
직접 만든 진은 유리병에 잘 담아 코르크 마개로 꼭꼭 막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함께 마실 겁니다. 저는 햇빛이 잘 드는 잔디밭에 앉아 주인이 만든 수준급의 진을 마시고 있습니다. 달콤하고 시큼하고 매콤합니다. 아주 향기롭고요.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물거품이에요. 그러니까 즐겨야죠.” 진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습니다.
남호주의 찬란한 햇살이 눈꺼풀 위에 어룽댑니다.

신념처럼 굳건한 풍경
오늘은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캥거루 아일랜드를 찾은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기도 하죠.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등의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탐방하며 야생 동물을 만나는 일은 감동적이고 가슴 찡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하죠. 동물의 생태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답니다. 큰소리로 떠들어서도 안되고 무턱대고 만져서도, 가이드의 허락이나 안내 없이 가까이 가서도 안됩니다. 지정된 탐방로를 따라가며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탐방 매너죠.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는 ‘리마커블 락Remarkable Rock’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투구나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바위가 바닷가 화
강암 암반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설치작품처럼 보이는 이 바위는 오랜 세월 거센 파도와 바람이 깎아 만든 것입니다. 석양 무렵에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데,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토 스팟 가운데 한 곳으로 손꼽히죠. 바위는 고요의 풍경 그 자체입니다. 오랜 세월 고요와 침묵에 단련된 육체로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바위가 두르고 있는 갑옷처럼 단단한 ‘고요’. 사람들은 갑각류 같은 그 고요 앞에서 우뚝 멈추고 오래도록 바위를 바라보곤 합니다.

(좌)04.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에는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나무데크 탐방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우)05.
성채처럼 서 있는 리마커블 락은 플린더즈 체이스 국립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다.

사랑스러운 도시 애들레이드
남호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애들레이드에 도착했습니다. 호주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영국의 영향을 유난히 많이 받은 도시에요. 1836년에 애들레이드 초대 총독인 힌드마시를 따라 온 270여 명의 영국 이민자가 정착하면서 애들레이드의 역사가 시작됐죠.
애들레이드는 영국 정부가 자유 이민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도시가 커져도 재정비할 필요없게 조성한 ‘계획도시’입니다. 그래서 애들레이드 지도를 보면 도시가 직사각형으로 재단되어 있답니다. 도시는 토런스강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는데, 이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애들레이드의 풍경은 평화롭고 차분합니다. 젊은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기고,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칩니다.

선물을 산다는 것
런들 스트리트를 걷다 초콜릿 가게인 ‘헤이그 초콜릿’을 발견했습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제 초콜릿 가게죠. 한국의 지인들에게 나눠 줄 초콜릿을 잔뜩 사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산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초콜릿을 사자마자 펜폴즈 와이너리로 달려갔습니다.
애들레이드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만 가면 된답니다. 펜폴즈는 호주의 국보급 와인이에요. 와인 전문지인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그랜지 1955년 빈티지가 ‘세기의 와인’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그랜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하고 응집력이 뛰어난 드라이 테이블 와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죠.
와인을 마시며 문득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을 알고 나서부터,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뒤로 좋은 풍경 앞에서 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당신이 생각난답니다. 당신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전 생에도 알았고, 그 앞의 생에도 알았던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에는 꼭 당신과 함께 하길 소망해봅니다.

06 – 07.
영국 정부가 조성한 도시인 애들레이드의 대표 거리 ‘런들 스트리트’에는 여전히 영국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다.

(좌)08.
팬폴즈 와이너리의 소믈리에

(우)09.
캥거루 아일랜드에서는 꼭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맛봐야 한다.

Travel Tip
애들레이드 보타닉 가든 레스토랑(www.botanicgardensrestaurant.com.au)은 보타닉 가든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인과 함께 다양한 호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다렌버그 와인(www.darenberg.com.au)에서는 남호주 와인 시음 뿐만 아니라 직접 블랜딩 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답니다. 펜폴즈 맥길 에스테이트(www.penfolds.com)는 미리 예약하면 편하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2019-09-03T08:30:02+09:00